삼성·SK 이어 LG까지 'CEO-이사회 의장 분리', 재계 '거수기 이사회' 오명 지우기 주목

▲ 삼성·SK에 이어 LG그룹도 '대표이사(CEO)-이사회 의장 분리' 체제를 본격 도입하는 등 최근 국내 재계에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 바람이 불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삼성과 SK에 이어 LG그룹까지 대표이사(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며, 재계에서 기업 지배구조를 선진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체제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장치로, 그동안의 '거수기 이사회'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같은 움직임이 단순 형식 변화에 그치지 않으려면, 경영진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 전문가가 사외이사를 맡는 방향으로 제도와 관행이 바뀌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상반기 지배구조와 관련한 대기업의 변화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점은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는 움직임이다.

특히 LG그룹 지주사 LG는 지난 3월26일 이사회에서 구광모 회장이 8년 만에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박종수 사외이사를 의장으로 신규 선임하며 이사회에 큰 변화를 줬다.

3월23일에는 LG전자가 강수진 사외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첫 사외이사 출신 의장으로 선임했다. 이로써 LG그룹의 상장사 11곳 모두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됐다. 

삼성과 SK는 이미 '사외이사 의장 체제'를 구축했다.

SK는 2019년 염재호 전 고려대학교 총장을 첫 사외이사 의장으로 선임했고, 지난해 3월부터는 기업인인 김선희 매일유업 부회장이 의장을 맡고 있다. 올해 3월25일에는 SK하이닉스가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성전자는 2020년 처음으로 사외이사 의장을 선임했으며, 지난해 3월에는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이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이 같은 변화는 상법 개정에 따른 '이사의 충실의무'와 맞물린 것으로 분석된다.

2025년 상법 개정에 따라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어졌다. 이사회는 대주주 이익만이 아니라 소수 주주의 이익도 고려해야 하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독립적 사외이사 의장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감독 기능 강화는 특정 대주주나 경영진의 독단적 결정을 방지하고, 투명한 기업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또 올해부터는 코스피 전체 상장사의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 의무 공시'가 시행된다. 또 블랙록, 뱅가드 등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대표이사-의장 분리' 여부를 핵심 투표 지표로 삼고 있는 만큼, 국내 대기업들로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위한 거버넌스 체계를 바꿔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삼성·SK 이어 LG까지 'CEO-이사회 의장 분리', 재계 '거수기 이사회' 오명 지우기 주목

▲  삼성전자가 2026년 3월18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제57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있다. <삼성전자>

그동안 국내 기업의 이사회는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2025년 국내 100대 기업(시가총액 기준) 사외이사의 이사회 상정 안건 반대율은 0.5%에 불과했다. 이사회에 상정된 전체 3514개 안건 가운데 부결·보류된 것은 단 13건으로, 사실상 사외이사들이 기업의 감시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반면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 맡은 기업에서는 경영진이 올린 이사회 안건이 부결되는 경우가 종종 나오고 있다.

SK는 지난해 '임원관리규정 개정' 안건이 부결처리됐으며, 카카오는 '계열회사 주주총회 부의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승인의 건'을 보완으로 의결했다. SK와 카카오는 지난해 이사회 안건 반대율이 각각 3.6%, 2.8%로, 100대 기업 중 안건 반대 상위 10곳에 포함됐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최근 주요 그룹들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것은 '경영'과 '감독'을 구조적으로 분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며 "최근 기업 이사회의 변화는 한국형 지배구조가 선진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만 사외이사가 여전히 거수기 역할에 머물거나, 의장이 실질적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다면 이는 '무늬만 분리'에 그칠 위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최근 국내 기업의 '대표이사-의장 분리' 움직임이 경영진의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독립적이지 않고 전문성 없는 인사가 사외이사와 의장이라는 타이틀만 걸치는 모습"이라며 "이는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가 아니라 기존 대표이사나 총수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독립성을 위해) 미국이나 일본 기업처럼 사외이사 임기를 1년으로 정하고, 매년 사외이사 전원을 재신임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은 대만 TSMC처럼  IT, 전략과 거버넌스 리더 등 외국인 전문가를 중심으로 이사회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