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BM이 5월7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전시한 양자컴퓨터의 구동용 프로세서 모형.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과 중국이 기존 슈퍼컴퓨터로 해결하기 어려운 암호 해독과 신소재·신약 개발 및 인공지능(AI) 최적화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 시장에 대거 투자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민간 기업 생태계와 국가 주도 투자를 중심으로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어 반도체와 클라우드 인프라 시장 등에 새로운 성장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나온다.
◆ 미국과 중국 양자컴퓨터 투자 경쟁 격화
31일 로이터와 아시아타임스 등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과 중국은 차세대 산업인 양자컴퓨터에서 치열한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의 28일자 기사를 보면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IBM은 앞으로 5년 동안 양자컴퓨터에 100억 달러(약 15조 원)를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통해 2029년 최초의 대규모 양자컴퓨터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등 다른 미국 기업도 자체 양자컴퓨터 개발에 각각 수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또한 지난해 산하 벤처캐피탈(VC)인 엔벤처스를 통해 퀀티넘과 퀘라 및 사이퀀텀 등 양자컴퓨터 관련 기업에 투자했다.
이처럼 미국은 대기업 중심으로 양자컴퓨터에 투자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유럽 씽크탱크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는 지난해 3월27일에 발간한 자료에서 미국이 2024년 세계 양자컴퓨터 민간 투자액 비중에서 44%로 1위를 차지했다고 집계했다.
이와 달리 중국은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으로 양자컴퓨터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투자전문지 배런스에 따르면 중국은 양자컴퓨터 대중화를 목표로 2030년까지 160억 달러(약 24조 원)를 지원한다.
올해 세운 제15차 5개년 국가 계획에서 양자컴퓨터를 핵심 미래산업 가운데 하나로 지정했고 이에 따라 산업을 육성할 계획을 세웠다.
아시아타임스는 26일자 기사를 통해 미국과 중국이 국가안보와 인공지능 경쟁력을 위해 양자컴퓨터 투자 확대에 나서며 차세대 기술 패권 경쟁이 본격화했다고 평가했다.
| ▲ 미국과 중국의 양자컴퓨터 투자액 비교. <그래픽 챗GPT로 제작> |
◆ 양자컴퓨터 시장 성장 기대에 투자자 관심 확대
양자컴퓨터는 0과 1의 이진법인 ‘비트’ 단위로 연산하는 기존 디지털 컴퓨터와 달리 0과 1 사이에 양자 상태를 신호로 쓰는 ‘큐비트’ 연산을 하는 컴퓨터를 말한다.
이론상 무수히 많은 정보를 훨씬 빠른 속도로 처리해 많은 기업이 상용화에 나섰지만 기술적 난도로 인해 아직 실험 단계에 머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각각 대기업과 국가 주도로 대규모 금액을 투자해 시장 선점에 나서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 정부도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자국 양자컴퓨터 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양자컴퓨터 경쟁이 연구개발 단계를 넘어 공급망과 표준 및 보안 체계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올해 5월21일 IBM과 글로벌파운드리를 비롯한 양자컴퓨터 기업 9곳에 모두 20억1300만 달러(약 3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기업은 지분도 인수한다.
앞서 미국 정부는 2024년 9월 양자컴퓨터 관련 부품 및 제조 장비 등의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경제전문매체 CNBC는 해당 정책에 대상국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을 견제하는 조치라고 분석했다.
영국 씽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지난 3월19일자 분석을 통해 “미국은 혁신 생태계를 안보 거버넌스 및 동맹 공급망과 연계하려 한다”며 “중국은 산업 정책과 전략 계획을 묶어 수직적으로 통합된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 중국과학기술대학교 연구팀이 개발한 양자컴퓨터 주장 4.0 시제품. <중국과학기술대학교> |
◆ 양자컴퓨터, AI·반도체 산업에 새 수요처로 부상 가능성
이렇듯 양자컴퓨터 경쟁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심화하면서 첨단 반도체와 고성능 메모리 시장에도 중장기 수요 확대 요인이 될 가능성이 떠오른다.
양자컴퓨터를 가동하고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기존 반도체로 보완하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IBM은 3월16일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양자컴퓨터는 태생적으로 노이즈(오류)가 발생하므로 GPU 및 CPU와 역할을 분담하고 오류를 줄여야 온전한 슈퍼컴퓨팅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경제전문지 쿼츠에 따르면 양자 처리 장치를 CPU와 GPU가 설치된 데이터센터 안에 설치하고 그 안에서 연산 작업에 따르는 부하를 나눠 처리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줄피 알람 양자컴퓨터 부문 부사장은 쿼츠를 통해 “양자컴퓨터가 독립적인 개체라 오해받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대규모 데이터센터 바로 옆에 자리한다”고 설명했다.
양자컴퓨터가 본격 상용화하면 첨단 CPU와 GPU 수요 또한 따라 늘 수 있는 셈이다.
자연히 CPU와 GPU에 들어가는 반도체 제조사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에도 양자컴퓨터 상용화가 수혜 요소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 양자컴퓨터 시대 주도권을 쥐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가운데 반도체 기업까지 수혜가 퍼질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양자컴퓨터는 인공지능 등 분야에서 기존 우려와 달리 GPU를 대체하는 게 아니다”며 “양자컴퓨터는 기존 슈퍼컴퓨터와 함께 작동해 막대한 양의 연산 작업을 처리하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