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고가 의류 소비가 먼저 살아나는 지금은 같은 선택이 다르게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불황기에 지켜온 브랜드 가치가 회복 국면에서는 오히려 반등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실적은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섬은 올해 1분기 매출 4104억 원, 영업이익 365억 원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7.9%, 영업이익은 67.7% 늘었다.
고수익성 패션 브랜드를 중심으로 판매가 회복되고 비용 통제 효과가 함께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자체 브랜드의 가격과 이미지를 지켜온 전략이 수익성 측면에서도 힘을 내기 시작한 셈이다.
한섬 관계자는 “의류 소비심리 회복세가 지속되며 국내 브랜드와 수입 브랜드의 1분기 실적이 모두 증가했다”며 “대표 브랜드인 타임과 시스템의 글로벌 사업을 확대하고 해외 브랜드를 추가로 발굴해 지속 성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해외 명품 가격 부담이 커진 점도 한섬에 우호적인 부분이다.
타임과 마인, 시스템은 해외 명품 브랜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접근 장벽이 낮다. 동시에 백화점 기반의 고급 이미지도 갖췄다. 명품 소비 부담은 줄이면서도 품질과 이미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소비자를 끌어들일 여지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 회복도 한섬에게 반가운 대목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국내 백화점의 명품과 패션 매출을 끌어올리는 주요 고객층이다. 원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한국 백화점에서 고가 의류를 구매할 유인도 커졌다.
이는 김민덕 사장의 글로벌 브랜딩 전략과도 맞물린다. 외국인 고객이 국내 백화점에서 한섬 브랜드를 접하고 해외 현지 매장에서 다시 만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2025년 11월7일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여성복 브랜드 '타임'의 대형 플래그십 매장. <한섬>
실제 한섬은 시스템옴므를 프랑스 파리에 있는 갤러리라파예트백화점 오스만 본점 남성관에 입점시켰다. 파리와 방콕 등 주요 해외 시장에서도 브랜드 접점을 늘리고 있다.
과거 해외 사업이 가능성을 시험하는 단계였다면 지금은 실제 매출 기반을 키워야 하는 단계로 평가된다. K패션 관심 확대와 인바운드(외국인의 한국 방문) 소비 회복이 맞물리면서 타임과 시스템을 ‘한국 프리미엄 패션’으로 각인시킬 기회가 커지고 있는 영향이다.
김민덕 사장은 올해 경영 기조로 ‘선택과 집중’을 내세웠다. 특히 타임과 시스템의 글로벌 브랜딩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3월 서울시 강남구에서 열린 한섬 제39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2026년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 역량을 끌어올리겠다"며 "대표 브랜드 타임·시스템의 글로벌 브랜딩 투자를 이어가고 스포츠·남성 등의 분야에서 유망 브랜드를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해외 브랜드 라인업 강화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한섬은 ‘아워레가시’, ‘키스’, ‘리던’, ‘닐리로탄’, ‘텐씨’ 등을 잇달아 들여오며 해외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왔다. 자체 브랜드의 고급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매장 경쟁력과 고객 선택지를 키우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물론 불안 요인도 존재한다. 회복된 소비심리가 한섬의 충성 고객 확대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고가 의류 소비 회복은 상대적으로 자산가와 외국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경기 전반의 회복으로 보기에는 이른 경향이 있다. 소비 양극화가 이어지면 프리미엄 패션 시장이 커지더라도 고객층 확대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해외 명품 브랜드와의 경쟁도 부담 요인 가운데 하나다.
한섬 자체 브랜드는 국내 백화점 시장에서 강한 인지도를 갖췄다. 하지만 글로벌 소비자에게는 아직 해외 명품만큼의 브랜드 파워를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타임과 마인, 시스템이 해외 명품의 대체재에 그치지 않고 한국 프리미엄 패션의 독자적 선택지로 자리잡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섬 관계자는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유럽을 넘어 북미·아시아 등으로 추가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며 “대표 브랜드인 ‘타임’과 ‘시스템’을 앞세운 글로벌 브랜딩 전략과 해외 패션 브랜드 포트폴리오 확대 등 두 가지 전략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