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과 미국이 수입관세율을 15%로 조정하는 무역협정에 합의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린 조치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합의 대가로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기금 조성을 약속했다. 자연히 한국 기업들의 역할도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는 15% 관세가 대미 무역에 '뉴 노멀'로 자리잡은 지금 주요 기업들이 안고 있는 과제와 대응 전략, 기회 요인들을 짚어본다.

-글 싣는 순서
① 한미 관세협상 타결, 한국은행 이창용 거시정책 운용 한숨 돌렸다
② 삼성전자 반도체 품목관세 아직 남았다, 이재용 피해 최소화 방안 모색 중
③ 3500억 펀드의 핵심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차기 수장 인선 더 중요해졌다
④ LG전자 한미 15% 상호관세에 가전사업 기대감, 중국보다 가격 ‘상대우위’ 가져간다
⑤ 김동관 한화솔루션 미국 새 관세 체제에 기대감, 중국산 태양광 빈자리 노린다
⑥ 수출강자 삼양식품에 드리운 그림자, 김정수 미국 가격인상·수출 다변화로 돌파구 모색
⑦ 현대차그룹 '관세 폭탄' 직면, 정의선 현지화 전략 강화로 정면 돌파 나선다
⑧ 미국산 LNG 수입 확대 직면한 가스공사, 위기 혹은 기회
⑨미국 투자 확대하는 SK, 최태원 에너지·AI·반도체서 새 사업기회 엿본다
⑩ 대상 영업이익 2천억 시대 관문에 복병 만나, 임세령·임상민 자매의 결단은

 
[관세 15% 시대] 수출 강자 삼양식품에 드리운 그림자, 김정수 미국 가격인상·수출 다변화로 돌파구 모색

▲ 김정수 삼양식품 대표이사 부회장이 6월11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나노융합국가산업단지에서 열린 ‘밀양 제2공장 준공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삼양식품>

[비즈니스포스트] K-라면에 미국 상호관세 15% 적용이 확정되면서 삼양식품이 현지 제품 판매 가격을 인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삼양식품은 해외에 생산공장이 없어 모든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관세에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를 부과하게 되면서 가격 경쟁력 악화을 피할 수 없을뿐더러 환율도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어 실적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김정수 삼양식품 대표이사 부회장은 미국 제품 가격인상을 통해 수익성 방어에 나서는 동시에 미국 이외 지역에서의 수출 다변화를 통한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13일 삼양식품에 따르면 현재 회사는 미국 수출 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미국 상호관세 부과 대응 방안과 관련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일부 품목의 제품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략적으로 관세율에 따른 대응 시나리오는 정해놨지만 현지 글로벌 업계 동향 등도 체크해서 면밀히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한미 관세협상 결과 미국이 한국에 8월1일부터 부과하기로 예고했던 25% 상호관세가 15%로 낮아졌다. 다만 기존에 라면은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됐으나 4월부터 10% 관세가 적용됐고, 1일부터는 관세율이 15%로 상승했다.

김정수 부회장은 ‘불닭’ 브랜드의 북미 지역 수출 호조에 힘입어 최근 삼양식품의 역대급 호실적을 이끌고 있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연간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새로 쓴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연결기준 매출 5290억 원, 영업이익 1340억 원을 내며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1분기 영업이익률은 25%에 달한다.

지난해 삼양식품 미국법인 매출은 2억8천만 달러(약 3900억 원)로 2023년보다 127% 성장하며 해외 법인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나타냈다. 전체 수출에서 미국법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27%에 이른다. 지난해 삼양식품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80% 정도였다.

삼양식품은 기존에도 미국에서 ‘불닭볶음면’을 국내보다 약 1.5배가량 비싼 가격에 판매해왔다. 해외에서는 국내 물가안정 정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다 K-푸드 열풍 속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다.

증권업계에서는 공급이 미국 현지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라 삼양식품이 현지 가격 인상해도 판매실적에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지 주류(메인스트림) 채널 입점을 빠르게 늘리고는 있지만 아직은 확산이 진행 중인 단계다. 코스트코처럼 아직 입점률이 낮거나, 전역 입점을 완료한 월마트 같은 경우도 물량 부족으로 최소주문량 수준만 배정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 치솟는 수요에 비해 아직 공급이 부족해 당분간 삼양식품의 실적 성장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관세 15% 시대] 수출 강자 삼양식품에 드리운 그림자, 김정수 미국 가격인상·수출 다변화로 돌파구 모색

▲ 삼양식품 밀양 제2공장. <삼양식품>

다만 제품 전량을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고 있는 삼양식품 입장에서는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세도 부담이다. 가격 인상으로 상호관세 부과에 따른 수익성을 방어하더라도 환율이 하락하면 그 폭만큼 매출이 줄어 실적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올해 초 1450원을 웃돌았던 원/달러 환율은 현재 1300원 중후반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약달러를 선호한다고 공언해왔다. 상호관세는 기존 25%보다 10%포인트 낮은 수준으로 확정됐지만 언제든 미국 정부의 주요국 통화절상 압력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양식품은 앞서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한 4월부터 태스크포스(TF) 팀을 구성하고 미국법인과 관세 부과에 따른 대응책을 논의해왔다.

미국 제품 가격 인상을 결정한 만큼 현재 미국 내 주요 거래처들과 협의를 거쳐 품목별·유통망별로 대응 방식을 달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채널별 최적 가격을 설정하기 위해 현지 시장과 경쟁업체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미국에 현지 생산체제 갖추는 것이 관세 및 환율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최적의 대응이다. 하지만 삼양식품은 최근 수출 생산 물량 확대를 위해 경남 밀양2공장을 준공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해외 첫 생산기지 구축 국가도 중국으로 낙점하고 지난달 첫삽을 떴다. 사실상 당분간 미국 현지 공장 건설이 불가능한 셈이다.

이에 김 부회장은 지역별 수출 다변화를 통해 미국 상호관세발 리스크를 줄여나갈 계획을 세웠다.

특히 첫 해외 생산기지를 건설 중인 중국은 삼양식품의 해외 최대 시장으로 지난해 중국법인은 매출 21억 위안(약 4천억 원)을 올려 전체 해외 매출의 28%를 책임졌다. 삼양식품은 작년 7월 현지 법인을 설립한 유럽에서도 올 1분기 1600만 유로(약 260억 원)의 매출을 거뒀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수출 볼륨이 크고 유럽법인 설립 뒤 유럽 지역 매출도 증가하고 있다”며 “지역별 수출을 다변화해서 미국 관세 관련 리스크를 줄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