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전과 과제
| ▲ 홍라희 전 관장이 2015년 5월21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2015 프로야구 삼성 대 두산의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
현행법상 이건희 회장의 사후 재산 가운데 약 33%가 홍라희에게 돌아가게 되는 만큼 삼성그룹의 후계구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홍라희와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등 삼성 주요 계열사 지분이 경영권 승계의 핵심이 될 수 있다.
홍라희는 2018년 6월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보통주 지분 0.84%를 보유해 이건희 회장(3.88%)에 이어 개인 2대주주에 올라있다. 이건희 회장의 사망 뒤 지분과 재산상속이 이뤄지면 홍라희에게 가장 많은 몫이 돌아가기 때문에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홍라희의 의중은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체제가 굳어진 만큼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에게 어느 정도의 계열사와 사업, 재산이 주어질 지도 홍라희의 뜻이 적지 않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홍라희는 이건희 회장이 2015년 5월 의식을 잃은 뒤 자녀들을 불러 삼성그룹이 어려운 상황인 만큼 경거망동하지 않고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경영에 잘 협력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라희가 삼성그룹에서 지닌 영향력과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평가
부친 홍진기 전 장관이 전주에서 판사 생활할 때 태어나 ‘전라도에서 얻은 기쁨’이란 뜻의 ‘라희(羅喜)’로 이름을 지었다고 알려졌다.
어머니 김윤남씨의 영향을 받아 독실한 원불교 신자다. 2011년 이건희 회장과 함께 원불교에 120억 원을 기부했고 2017년 원불교 수륙재를 지냈다. 수륙재란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종교의식이다.
2014년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탈세와 횡령, 배임 혐의로 기소됐을 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명희 신세계 그룹회장 등과 함께 탄원서를 제출했다.
리움 관장을 지내던 시절 정기적으로 출퇴근하지 않고 주요 행사나 전시가 있을 때 리움미술관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관을 방문할 때 관계자들이 의전하는 것을 불편히 여겨 조용히 머물다 가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공연을 관람하거나 공항에서 입출국하는 등 일정을 소화할 때 대부분 의전을 거부하고 홀로 움직이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신중하고 엄격한 성격으로 이재용 부회장 등 자녀들을 엄하게 키운 것으로 전해진다.
패션에 조예가 깊어 화려한 고급 제품만을 착용하기보다 상황과 장소에 맞는 의복을 갖추는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홍라희가 일정을 소화하며 착용한 의복과 핸드백 등 소품은 항상 화제가 됐고 고가임에도 매장에서 곧바로 동이 나기도 했다.
2010년을 제외하고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미술 월간지 아트프라이스와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선정한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인물' 1위에 올랐다.
미국 미술잡지 아트뉴스는 2015년 홍라희를 두고 "한국의 국내외 현대미술에 가장 인상적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으며, 리움으로 서울을 국제적 문화도시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홍라희와 이건희 회장의 결혼은 양가 부친의 인연에서 이어졌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1959년 비료공장 건설을 위해 이전부터 친분이 있던 당시 법무부장관이던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과 만났다.
이병철 창업주는 이승만 정부 붕괴 뒤 홍진기 전 장관이 형무소에 있을 당시에도 여러 차례 특별면회를 위해 찾아갔다.
이 창업주는 홍진기 전 장관을 영입해 중앙일보를 창간했다.
홍라희는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입선한 뒤 부친의 부탁으로 평소 미술애호가였던 이 창업주의 전람회 관람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건희 회장이 유학을 준비하다 일본에 체류하던 당시 홍라희는 모친과 함께 일본을 방문해 이건희 회장과 만났다. 홍라희는 대학 졸업 뒤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결국 졸업을 앞두고 약혼한 뒤 그해 결혼했다.
| ▲ 홍라희 전 관장이 2014년 1월9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오른쪽)과 삼성 사장단 신년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