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2025년 6월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연수원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서 열린 '밥상물가 안정을 위한 경청 간담회'에 참석해 식품·외식업 협회와 전문가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국무총리 후보자로서 간담회 열어 국정 현안 챙겨
김민석은 국무총리 후보자로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발맞춰 정책 간담회를 여는 등 적극적 행보를 보였다.
김민석은 2025년 6월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연수원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서 열린 '밥상물가 안정을 위한 경청 간담회'에 참석해 고물가 상황에 관한 의견을 청취하고 대응책을 살폈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9일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서민 먹거리인 라면이 한 개에 2천 원이라는 데 사실인지를 물으며 정부 당국자들에게 물가 대책을 주문하자 직접 물가 동향을 점검하고 의견 수렴에 나선 것이다.
김민석은 식품과 외식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소비자들에게 가격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대안도 내놨다.
김민석은 이날 ‘밥상 물가안정 간담회’에서 “과거처럼 기업의 판매가를 가격 규제 형식으로 내리누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유통 과정이 불분명하거나 불투명한 품목들에 대해서는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석은 장마철이 다가온 상황을 고려해 재난 안전 대비 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김민석은 2025년 6월18일 서울시 재난상황실을 방문해 이한경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으로부터 여름철 풍수해 대책 추진 상황을 보고받고 서울시 관계자들에게 침수예측 정보시스템과 서울시 장마 대책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이재명 정부는 재난 상황과 관련해 먼저 뛰고 전국적인 스마트 재난대응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석은 “재난이 터졌을 때만 움직이지 않고 위기보다 먼저 뛰는 정부, 국민이 체감하기 전에 움직이는 선제적 대응의 정부로 완전히 탈바꿈하겠다”며 “서울시와 같이 기술과 현장을 결합한 대한민국형 스마트 재난 대응 체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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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
이재명 대통령이 김민석을 새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 대통령은 2025년 6월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김민석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김민석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배경을 두고 “구체적 감각과 통합의 정치력을 함께 갖춘 인사로 위기 극복과 민생경제 회복의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며 “내각과 국회, 국민을 잇는 조정자로 새 정부 통합의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민석은
이재명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민생’과 ‘통합’을 고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민석은 2025년 6월5일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준비단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며 “국민의 은혜를 잊지 않고 새 정부는 국민의 집단 지성을 하늘과 같이 받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생과 통합 두 가지를 매일 매일 (마음에) 새기겠다”고 말했다.
| ▲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 상임 공동 선대위원장이 2025년 6월2일 서울 여의도에서 이재명 후보의 마지막 유세에 앞서 사전 연설을 하고 있다. <김민석 페이스북 갈무리> |
△더불어민주당 상임 공동선대위원장 맡아 대선 승리에 기여
김민석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의 상임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대선 승리를 위해 힘을 보탰다.
김민석은 2025년 4월30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진짜 대한민국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
이재명 선거의 컨셉은 ‘경청’이다”라며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국민들의 말씀을 경청하며 현장을 돌 것”이라고 다짐했다.
보수진영 주요 대선 후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데도 주력했다.
김민석은 2025년 5월2일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보수진영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상황을 두고 “
한덕수 출마는
윤석열 출마”라며 “
한덕수는 무책임의 대명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대선 승리 이후 ‘공동정부’ 구성에 합의하며 연대하자 이를 ‘사쿠라(변절자) 행보의 끝’이라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보수진영 대선 후보 단일화를 놓고도 대선 전날까지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두 후보 단일화 시너지는 거의 없을 것이란 메시지를 내놓는 등 견제구를 날렸다.
김민석은 2025년 5월23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원칙 없는 정치는 대부분 실패하고 명분이 없으면 (단일화가 돼도) 1 플러스 1이 2가 아니라 1.5에도 못 미치게 될 것이다”라며 “야합 단일화가 돼도 그것이 판을 뒤집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2025년 4월2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미 관세협상 추진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민석 페이스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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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향해 미국과 관세협상 중단 촉구
김민석은 대선 출마설이 불거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신속한 관세협상에 나서려 하자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김민석은 2025년 4월16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본격 협상과 타결은 선출된 정당성과 협상력을 가진 새 정부의 책임과 권한이고, 파면된 대통령의 잔여 내각인
한덕수 대행 체제는 성실한 예비협의에 머물러야 한다”며 “대통령 권한대행을 할 거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출마할 거면 당장 대미 관세협상에서 손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가 출범한 뒤 우리나라에 상호관세 유예기간을 2025년 7월8일까지로 통보했고 정부를 운영하고 있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미국과 관세협상 준비를 지시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김민석은 한 권한대행이 6월4일 대통령 선거에 출마 의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관세협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중립적으로 대선을 관리하고 정부를 운영해야 할 대통령 권한대행의 본분을 지키지 않고 대선 출마라는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의 중요한 대외 협상을 졸속으로 추진하여 국익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민석은 이튿날인 4월17일부터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선 출마용 졸속 대미 통상협상’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펼치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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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예견
김민석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것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김민석은 2024년 8월17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국방부 장관으로의 갑작스러운 교체는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는 것이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하고 그 후임에
김용현 경호처장을 지명했다.
김민석은 2024년 9월2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김 후보자를 향해 “장관이 된 이후 계엄 발동을 건의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며 비상계엄 선포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 뒤 9월20일에는 정부가 계엄을 선포할 때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계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 내부에서도 김민석의 ‘비상계엄 예견’을 두고 견해가 엇갈리며 논란이 일었으나 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실제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그의 예견은 현실이 됐다.
김민석은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비상계엄을 예측한 이유를 밝혔다.
김민석은 2024년 12월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비상계엄을 예상한 근거를 묻는 질문에 “첫째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이 굉장히 수상쩍고, 계엄론의 논리적인 밑밥을 까는 빌드업이었고, 두 번째로 동원될 세력으로서 충암파들을 재배치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판단했으며, 세 번째로 가장 큰 핵심적 동기는 ‘김건희 감옥가기 싫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채상병 문제와 관련돼 있는 대통령을 포함해 국방부 장관 등등이 연루돼 진실이 규명되면 감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들의 자기 보존을 위해서 사고를 친 것”이라며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동기가 존재하고 이미 공개한 불법 모임(한남동 모의) 정황까지 파악했기 때문에 동기, 논리, 세력, 정황, 조직 이런 것들을 다 보고 이 흐름을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가 2024년 8월11일 대전 서구 배재대 스포렉스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자 합동연설회에서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
김민석은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해 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김민석은 2024년 8월18일 치러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결과 최고위원 후보들 가운데 가장 높은 18.23%를 득표해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은 모두 5명을 선출했는데 김민석이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함에 따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대표와 원내대표에 이어 발언 기회를 얻는 ‘수석 최고위원’이 됐다.
김민석이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재명 당 대표 후보의 공개적 지지를 얻은 점이 당원들로부터 많은 득표를 얻은 핵심적 이유로 꼽혔다.
이재명 당 대표 후보는 2024년 7월20일 유튜브 방송에서 “그런데 왜 이렇게 김민석 후보의 표가 안 나오느냐”고 말했고 그 이후 김민석의 득표율이 급격한 상승세를 탔다.
실제 김민석도 전당대회 후보 유세에서
이재명 대표 후보의 집권을 위한 토대를 갖추는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고 4선 의원 고지에 올라
김민석은 약 18년 동안의 정치적 야인 생활을 마무리하고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해 4선 의원이 됐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16년 9월18일 원외 민주당과 통합한다고 밝혔다. 두 당이 통합되면서 김민석도 14년 만에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했다.
김민석은 2016년 9월9일
추미애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민주세력의 분열과 아픔에 대한 공감대가 크다”며 “정권교체를 위해 다양한 통합이 필요하다는 원칙에도 마음을 같이한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통합과 복당 의사를 내비쳤다.
김민석은 더불어민주당에 복귀한 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의 종합상황본부장을 맡았고 대선이 끝난 뒤 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원장으로 임명됐다.
그 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과거 지역구였던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해 50.26% 득표율을 기록하며 3선 의원 고지에 올랐다. 2002년 서울시장 낙선 후 18년 만에 다시 원내 국회의원으로 복귀한 셈이다.
김민석은 제21대 국회에서 간호법 수정안을 대표발의했고 채현일 영등포구청장과 함께 영등포구를 자연과 사람,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로 만들겠다는 비전인 ‘뉴신길 뉴대림 비전’을 발표했다.
오랜 정치적 경험과 전략적 능력을 인정받아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제가 출범한 뒤 2023년 당 정책위의장에 임명됐다.
김민석은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총괄상황실장을 맡으며
이재명 대표의 친명(친
이재명) 중심 공천 후폭풍을 줄이고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이와 함께 김먼석 자신도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해 50.18%를 득표해 박용찬 국민의힘 후보를 누르고 4선 의원이 됐다.
| ▲ 김민석 민주당 대표(왼쪽)가 2016년 9월9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시장 낙선 후 18년의 정치적 공백
김민석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 2020년에 다시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정치적으로 힘든 기간을 보냈다.
김민석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낙선한 뒤 같은 해 대선을 앞두고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에 반대해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뒤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의 단일화를 추진하는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에 참여했다.
그러나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는 우여곡절 끝에 실패로 돌아갔고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반등하면서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른바 ‘후단협’ 사태의 파장으로 김민석은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정치복귀에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김민석은 대선이 끝난 뒤 2003년 새천년민주당으로 복당했으나 친노(친노무현)계가 창당한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지 않고 그대로 새천년민주당에 남았다. 이어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영등포 갑에 출마했으나 3위로 낙선했다.
김민석은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미국 뉴저지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2007년 귀국해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복귀했다.
그러나 2008년 총선에서는 서울시장 선거 당시 불거졌던 회계 문제로 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으며 2009년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면서 2015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됐다.
김민석은 단국대학교 초빙교수와 법무법인 세하의 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다 2014년 민주당의 이름을 살린다는 취지로 ‘원외 민주당’을 창당해 대표를 맡았다.
△정치입문 후 38세에 서울시장 후보로 오르며 승승장구
김민석은 학생운동에 헌신하다 투옥돼 수감생활을 마친 뒤 야권의 거목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며 정치에 입문했다.
김민석은 1990년 이기택 전 의원 등이 주도한 꼬마민주당에 입당한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민주당과 꼬마민주당의 합당으로 창당된 민주당에 참여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만 27세의 나이로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에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나웅배 민주자유당 후보에게 패했다.
김민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5년 정계에 복귀하면서 민주당으로부터 분당된 새정치민주회의에 입당했으며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해 최영한 신한국당 후보를 꺾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민석은 1997년 한보그룹 청문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고 1997년 대선에서는 홀로 연설하는 장면이 김대중 후보의 선거 광고에 활용되는 등 청년 정치인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그 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해 60.39%를 득표하며 재선의원이 됐고 야권의 차세대 정치지도자로 주목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김민석은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돼 출마했으나 43.02%를 득표하는 데 그치며 낙선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 운동 적극 참여
김민석은 1982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1985년 4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에 선출됐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민주화 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김민석은 1985년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 등 서울 5개 대학교 학생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서울 미국문화원을 점거한 뒤 농성을 펼쳤던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군사정부로부터 수배대상에 올랐다.
그는 1985년 6월7일 체포됐으며 1986년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6개월을 선고받고 3년 간 복역한 뒤 1988년 말 노태우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김민석은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에 본인이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2025년 6월17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당시 그 농성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대한민국 전체학생회 대표이자 서울대 학생회장으로서 그 농성에 참여했던 학생들에게 미국 문화원 측이 음식과 물을 잘 공급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민석은 이어 “당시 저를 포함한 학생들의 요구는 미국이 전두환 군사독재자, 광주 학살자를 지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며 “그 요구가 정당했기 때문에 미국은 군사독재자들의 광주 학살을 지원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