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 대형 증권사 도약
키움증권은 2022년 4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로 지정됐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자기자본 3조 원 이상 증권사 가운데 금융위원회의 지정을 받은 곳이다.
2022년 1분기 기준 키움증권의 연결기준 자본규모는 4조3500억 원이다. 키움증권은 2000년 1월 자본금 500억 원으로 시작해 22년 만에 87배 성장했다.
국내 증권업계에서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된 곳은 키움증권을 포함해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메리츠증권, 하나금융투자 등 모두 9곳이다. 키움증권은 9번째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됐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되면 기업 신용공여 업무가 가능해지고 신용공여 한도가 자기자본의 200%로 늘어난다.
키움증권은 리테일 중심의 사업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지정을 계기로 기업금융(IB) 사업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키움증권은 자기자본이 4조 원 이상이어야 하는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에도 도전한다. 초대형 IB가 되면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아 자기자본의 200% 한도 안에서 만기 1년 이내의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기업대출과 부동산금융 등으로 다양하게 운용할 수 있어 기업금융 확대에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키움증권을 영업이익 1조 증권사로 키워
키움증권은 2021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했다.
2020년에 영업이익이 9690억 원에 그쳐 영업이익 1조 클럽에 들지 못한 아쉬움을 2021년에 씻어냈다.
키움증권의 2021년 연결기준 실적을 보면 영업수익(매출)은 4조9151억 원, 영업이익은 1조2089억 원, 순이익은 9037억 원이다.
2020년과 비교해 영업수익은 8.75%, 영업이익은 24.76%, 순이익은 28.48% 증가했다.
2020년에 영업이익이 104.56%, 순이익이 94.31% 급증한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둔화했다.
2022년에는 증시 둔화 등으로 실적이 부진해 연간 영업이익 1조 원 유지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분기 영업이익은 2132억 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보다 38.6% 감소했다.
△다우키움그룹 경영권 승계
김익래는 다우키움그룹의 2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김익래의 아들인 김동준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는 2019년 1월1일 키움인베스트먼트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2021년 연말 사장에 올랐다.
2021년부터 키움프라이빗에쿼티 대표이사도 겸임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다우기술, 다우데이타를 거쳐 키움인베스트먼트로 자리를 옮겼다.
업계에서는 김 대표가 다우키움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대비해 사업 전반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고 본다.
김 대표는 그가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회사인 ‘이머니’를 통해 다우키움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다우데이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다우키움그룹의 지배구조는 다우데이타→다우기술→키움증권으로 이어진다.
업계에서는 김익래가 이머니의 다우데이타 지분을 늘려 가는 방식으로 김 대표의 다우키움그룹 승계를 추진하는 것으로 본다.
김익래는 다우데이타의 지분 40% 이상을 보유한 최대주주였지만 이머니에 꾸준히 지분을 넘겨왔다. 이머니가 보유한 다우데이타 지분은 2011년에만 해도 10% 수준에 불과했는데 2021년 10월28일을 기점으로 이머니가 다우데이타 최대주주에 올랐다.
2022년 3월 말 기준 이머니의 다우데이타 지분율은 31.56%이며 김익래가 보유한 지분은 26.57%다.
이머니 지분은 김동준 대표가 33.13%, 김익래의 장녀 김진현과 차녀 김진이 키움투자자산운용 상무가 각각 6.02%씩 들고 있다. 세 명의 지분을 합치면 45.18%에 이른다.
△키움뱅크 제3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심사 탈락
키움증권은 2015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사업 도전에는 김익래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익래는 인터넷전문은행을 다우키움그룹의 새 성장동력으로 정하고 사업 준비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키움증권은 2015년 은산분리 정책에 가로막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포기했다가 2018년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재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2019년 키움증권 중심으로 추진된 키움뱅크는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심사에서 탈락했다.
금융위원회는 2019년 5월26일 키움뱅크 컨소시엄과 토스뱅크 컨소시엄 둘 다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밝혔다.
키움뱅크 컨소시엄에는 키움증권을 주축으로 KEB하나은행, SK텔레콤 등 모두 28곳이 참여했다. 키움증권은 키움뱅크 컨소시엄의 지분 25.63%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키움증권은 2018년 증권업계 최초로 프로야구단 네이밍 스폰서가 됐다. 이를 두고 그룹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김익래의 포석이라는 말이 나왔다.
2018년 11월6일 키움증권은 프로야구단 서울히어로즈와 메인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기간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다. 서울히어로즈는 2018년까지 '넥센히어로즈'로 불렸지만 2019년에 ‘키움히어로즈’가 됐다. 야구단 이름에 증권사 이름이 들어간 것은 키움히어로즈가 최초다.
△다우키움그룹 대기업 지정
김익래가 다우기술을 설립한 지 33년 만에 다우키움그룹이 대기업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9년 5월15일 다우키움그룹을 포함해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59개 기업집단을 2019년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김익래는 다우키움그룹 총수(동일인)로 지정됐다.
다우키움그룹은 2019년에 공시대상 기업집단 명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다우키움그룹의 자산총액은 5조 원으로 대기업집단 59곳 가운데 59위였다.
2022년 4월 공정위가 발표한 공시대상 기업집단 현황에 따르면 다우키움그룹의 순위는 55위로 1년 전 56위보다 1단계 높아졌다.
공정자산 기준 다우키움그룹의 자산총액은 8조5050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매출은 6조5400억 원, 순이익은 1조1400억 원이다. 2020년 매출 5조1200억 원, 순이익 8500억 원보다 각각 27.7%, 34.1% 증가했다.
△프로야구단 '키움히어로즈'로 키움증권 마케팅 강화
키움증권은 프로야구단 키움히어로즈의 메인 스폰서를 맡고 있다.
키움증권은 2018년 11월6일 서울 여의도 키움증권 본사에서 프로야구단 서울히어로즈와 메인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기간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으로 연간 스폰서 금액은 100억 원이다.
서울히어로즈의 구단명은 이 계약에 따라 2019년부터 5년 동안 키움히어로즈가 된다.
김익래는 프로야구 마케팅을 향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전문은행 등 새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마케팅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익래는 오래전부터 프로야구 마케팅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왔다.
키움증권은 2006년부터 야구장 펜스 광고를 통해 프로야구 마케팅을 진행했다. 프로야구단과 손잡고 각종 프로모션과 유소년 야구도 지원했다. 비록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2008년에는 야구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사를 맡는 방안을 타진한 바 있다.
△다우데이타 각자대표로 경영현장 복귀
김익래는 2015년 다우데이타 대표이사에 오른 뒤 약 7년 동안 다시 경영일선에서 활동했다.
다우데이타는 2015년 3월27일 정동철 대표이사 체제에서 정동철, 김익래 각자대표이사 체제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김익래는 그동안 다우키움그룹 계열사의 경영을 전문경영인에 맡겨두고 그룹의 대외업무 등에만 관여했다.
다우데이타가 핀테크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한 것이 김익래의 경영복귀 이유로 꼽힌다.
다우데이타는 종합결제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밴코리아를 2013년 인수했고, 주주총회를 통해 직불 전자지급수단 발행과 관리사업에도 진출할 것을 의결했다.
일부에서는 김익래가 다우키움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다우데이타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돌아왔다는 말이 나왔다.
정동철 대표가 2017년 9월 사임한 뒤에는 김익래가 이인복 대표이사와 함께 다우데이타 각자대표 체제를 유지했다. 2021년 1월 성백진 각자대표이사가 합류해 다우데이타는 3인 대표이사 체제가 됐다.
김익래는 2022년 3월 다우데이타 사내이사에서 물러나 기타비상무이사를 맡으면서 7년 만에 다시 경영일선에서 후퇴했다.
△다우키움그룹 수직계열화
김익래는 다우키움그룹의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다우기술은 2006년 8월22일 보유하고 있던 다우데이타 주식 1100만 주(49.48%) 전량을 김익래에게 163억 원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김익래는 이 지분 취득으로 다우데이타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다우데이타, 다우기술, 키움증권으로 이어지는 다우키움그룹의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2022년 3월 말 기준으로 다우데이타는 다우기술의 지분을 45.20% 보유하고 있고, 다우기술은 키움증권의 보통주 41.19%를 들고 있다.
키움증권은 다시 키움인베스트먼트, 키움저축은행, 키움투자자산운용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다우키움그룹 소속 상장사는 다우데이타, 다우기술, 키다리스튜디오, 사람인HR, 한국정보인증, 와이즈버즈, 키움증권 등 7개다.
이 밖에 사모투자회사와 외국법인 등을 포함해 93개의 비상장 계열사가 있다.
△키움증권 통해 증권업 진출
김익래는 키움증권을 통해 증권업에 진출했다.
김익래는 2000년 1월 금융감독위원회 구조개혁기획단의 김범석 팀장을 초대 사장으로 영입해 키움증권(옛 키움닷컴)을 설립했다.
키움증권은 2000년 5월4일부터 온라인 주식위탁매매 서비스를 시작했다. 영업점이 없는 것을 장점으로 살려 저가 수수료 전략을 펼쳤다.
처음 1년 동안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기존 증권사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의 수수료로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개인투자자 사이에 알려지며 주식위탁매매 시장에서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키움증권은 2005년부터 2021년까지 17년 연속 주식위탁매매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오고 있다. 2021년 기준 점유율은 21.56%다.
개인투자자 시장에서 특히 강점을 지니고 있다. 2005년부터 개인투자자의 약 25%가 키움증권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영웅문’을 사용해오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키움증권은 2004년 4월23일 코스닥시장에 상장됐고 2009년 8월3일 코스피시장으로 이전상장됐다.
김익래는 키움증권을 시작으로 금융업 전반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2003년 키움인베스트먼트를 인수한 데 이어 2013년 키움저축은행, 2016년 키움예스저축은행을 인수했다.
2010년 키움자산운용을 출범시킨 데 이어 2014년 키움투자자산운용, 2017년 키움프라이빗에쿼티, 2018년 키움캐피탈, 2020년 키움에프앤아이를 차례로 출범시켰다.
△다우기술 설립과 상장
김익래는 소프트웨어 유통개발회사 다우기술을 세웠다.
김익래는 1986년 1월 큐닉스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과 함께 자본금 5천만 원으로 다우기술을 설립했다.
다우기술은 컴퓨터 운영체계인 ‘유닉스(UNIX)’를 한글화하는 작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외국 유명 소프트웨어의 한글화 작업을 주요 사업영역으로 삼아 성장했다.
김익래는 사업 초기에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복제가 어려운 하드웨어 내장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쪽으로 사업방향을 바꿔 위기를 넘겼다.
다우기술은 소프트웨어 개발로도 사업영역을 넓혔고, 1994년 정부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에 힘입어 실적이 급성장했다.
1997년 기업공개를 추진해 코스피 상장에 성공했다. 공모가는 5만2천 원으로 결정됐다.
다우기술은 다양한 인터넷 솔루션을 개발해 인터넷 시대를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익래는 2000년 3월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면서 다우기술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익래는 2000년 5월 매일경제신문에 게제된 글에서 “다우기술이 개발했던 인터넷 솔루션이 키움증권 등 자회사를 설립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큐닉스 공동 설립
김익래는 컴퓨터 개발회사 큐닉스를 설립했다.
김익래는 1981년 1월 이범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와 함께 ‘국내 1호 벤처기업'으로 불리는 큐닉스를 공동 설립했다.
큐닉스는 애플 컴퓨터의 한글화에 주력하면서 한글 프린터 모듈을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한글 프린터 모듈의 복제품이 시장에 많이 나돌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마이크로스프트의 한국 독점 대리점권을 따내면서 사업이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김익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국내 소프트웨어 사용허가를 들고 있던 금성사(현 LG전자)의 상무를 직접 찾아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 큐닉스를 한국 대리점으로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익래는 큐닉스에서 연구개발을 제외한 기획, 영업, 재무 등 모든 분야를 총괄했다.
동업자였던 이 교수는 사업방향을 두고 김익래와 의견 차이가 있었고 이를 좁히지 못해 큐닉스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