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021년 1월28일 취임 첫 일정으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서울 동부구치소를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법무부 장관 취임 뒤 검찰개혁 행보 이어가
박범계가 법무부 장관이 된 뒤 받아든 첫 번째 과제는 검찰인사였다.
박범계는 2021년 2월 검찰인사를 놓고 윤석열 검찰총장과 만나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박범계는 윤 총장 만남을 놓고 “협의가 아니라 의견 청취일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장관으로서 본인 책임 아래 검찰인사를 실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박범계는 2021년 2월7일 내놓은 검찰인사에서
추미애 전 장관의 검찰인사 흐름을 그대로 이어갔다.
추미애 전 장관이 중용했던 인사들을 그대로 뒀다.
다만 월성원전 수사를 담당한 대전지검 쪽도 자리를 유지했다. 이 사건은 윤 총장이 청와대를 정면 조준하면서 정성을 기울였던 사건으로 박범계는 윤 총장과의 정면충돌을 피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나중에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박범계의 검찰인사를 두고 반발해 사의를 표명하는 '잡음'이 일기도 했다. 신 수석은 2021년 2월22일부터 청와대에 출근해 거취를
문재인 대통령에 일임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나중에 3월4일 윤석열 총장의 사의를 수용하면서 신 수석의 사표도 같은 날 전격 수리했다.
박범계는 2021년 2월22일 발표된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하는 등 윤 총장 압박을 이어갔다.
윤 총장은 2021년 3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놓고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등 2021년에도 검찰개혁을 둘러싼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은 계속 이어졌으나 윤 총장이 3월4일 사의를 밝히면서 일단락됐다.
△제 19, 20, 21대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
박범계는 2012년 제 19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됐으나 2002년 정치에 입문했던 만큼 초선 의원임에도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2012년 5월부터 1년 동안 민주통합당의 원내부대표를 맡았고 초선으로 드물게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간사도 맡는다.
2013년에는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대여 공세에 앞장 선다.
2016년 제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자 국정농단 등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간사를 맡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등을 거쳐 생활적폐청산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에 주도적 역할을 한다.
2020년 제 21대 국회 들어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이른바 '추-윤 갈등' 등 검찰개혁 관련 현안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특히 2020년 국정감사에서 사법연수원 동기로 한 때 가까운 사이였던 윤석열 총장을 향해 “자세를 똑바로 하라”고 호통을 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검찰개혁을 향한 적극적 행보를 인정 받아 2020년 12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기에 이른다.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국회의원에 도전
박범계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법조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대통령직 인수위에 참여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 2003년에는 청와대에서 민정2비서관, 법무비서관 등을 맡았다.
민정2비서관으로 있으면서 ‘굿모닝시티’ 실명보도 파문 등을 겪었고 2004년 제 17대 총선에 도전하기 위해 청와대 비서관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17대 총선 때는 당내 경선에서 밀렸고 18대 총선에서는 낙선하는 등 실패를 이어가다 2012년 제 19대 총선에서 당선된다.
△2002년 노무현 대선후보 지지하며 정치 입문
박범계는 판사로 재직하다 2002년 10월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캠프에 합류하며 정치에 입문한다.
박범계가 노무현 선거캠프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김민석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지지를 철회하고 정몽준 후보의 진영에 합류한 일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박범계는 자서전인 ‘내 인생의 선택’에서 당시 일을 놓고 이렇게 적었다.
“그는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선택을 했다. 그것은 배신이었고 정통성에 대한 반역이었다. (중략) 동시대를 살았던 김민석이 내 가슴속 깊이 이글거리던 정의감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박범계가 판사직을 내놓으면서까지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한 데는 사법연수원생 시절 연수생 자치회에서 발간하던 연수지의 편집장을 맡아 ‘연수생이 존경하는 법조인’ 1위였던 당시 노무현 변호사를 인터뷰한 일이 계기가 됐다.
박범계는 당시 일을 놓고 “원고를 받아보고, 읽어보고, 편집하고, 싣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매료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