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해철 신임 행정안전부 장관이 2020년 12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행정안전부 장관 취임
문재인 정부에서 세 번째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됐다.
전해철은 2020년 12월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된 취임식에서 “위기 상황을 발판 삼아 국민 모두가 안전하고 골고루 잘 사는 나라를 구현해갔으면 한다”며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2월4일 전해철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전해철을 두고 “국회에서 권력기관 개혁, 과거사 진상규명, 사법개혁 등을 위해 노력해온 변호사 출신의 3선 국회의원”이라며 “그동안 지방자치법, 지방세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는 등 지방분권과 지방재정, 지역균형발전 등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정 수석은 “돌파력과 리더십, 당정청의 다양한 국정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재난관리체계의 강화, 실질적 자치분권 실현, 정부혁신 등의 국정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특히 지역균형뉴딜을 통해 중앙과 지방 사이 균형발전을 잘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해철이 친문재인계 핵심으로 꼽히는 까닭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의 파상공세가 예상되기도 했지만 비교적 무난히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인사청문보고서에서 전해철을 놓고 "후보자가 3선 국회의원,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국정 전반에 대해 쌓은 경험이 행안부 장관 직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고위공직자 인사 배제의 7대 원칙에 위배되지도 않는다"고 평가했다.
다만 "현역 의원이자 대통령 핵심 측근으로 내년 재보궐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 2006년 구입한 아파트에 실거주하지 않고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은 점 등은 공직자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해철은 장관에 오르며 중앙재해대책본부 2차장도 함께 맡게 됐다.
2021년 1월11일 코로나19 예방접종 지원단을 구성해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 전해철은 "질병청, 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하고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꼼꼼히 점검해 국민이 안심하고 신속하게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1대 국회 민주당 첫 원내대표 도전 실패
전해철은 제 21대 총선에서 180석이 넘는 의석을 얻어 거대여당이 된 민주당의 첫 원내대표를 노렸지만 고배를 마셨다.
전해철은 2020년 4월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고 개혁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줬다. 이제 시대적·역사적 과제 실현은 민주당의 몫"이라며 원내대표 경선 출마 뜻을 밝혔다.
3선인 전해철과 함께 4선인 김태년·정성호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했다.
김 의원은 친문 당권파, 정 의원은 계파색 옅은 비주류 세력, 전해철은 핵심 친문으로 분류됐다.
2020년 5월7일 경선 1차 투표 결과 전해철은 163표 가운데 과반에 못미치는 72표를 얻는 데 그쳐 낙선했다.
김태년 의원은 과반을 넘는 82표를 얻어 1차 투표에서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정성호 의원은 9표를 받는 데 그쳤다.
| ▲ 전해철(왼쪽부터), 양기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 후보가 2018년 4월17일 SBS에서 TV토론회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전해철 블로그> |
△민주당 경기도지사후보 경선 출마
전해철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경기도지사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전해철은 2018년 1월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지방선거 승리가 매우 중요하다”며 “경기도지사 경선 준비에 매진하겠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이날 전해철은 민주당 경기도당위원장을 사퇴했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면 선거 120일 전까지 도당위원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전해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당시 경기도 성남시장으로 있던 이재명 지사였다.
이 지사는 2017년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출마한 적이 있는 만큼 인지도 측면에서 전해철을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전해철은 친문 핵심으로 꼽히며 권리당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전해철은 경선 과정에서 이른바 ‘혜경궁 김씨’(‘정의를 위하여’ @08_hkkim) 계정을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기도 했다.
혜경궁 김씨가 전해철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등에 비방 글을 올렸다는 이유에서다.
전해철은 2018년 4월8일 “계정 주인이 누구인지, 왜 그런 패륜적 글을 썼는지에 관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해 고발조치했다”고 말했다.
당시 혜경궁 김씨 계정이 이재명 지사의 부인 김혜경씨의 것이란 의혹이 나오던 터였다.
혜경궁 김씨 계정과 관련한 수사는 경선이 끝날 때까지 종결되지 않았다.
민주당이 2018년 4월18~20일 실시한 경기지사후보 경선 결과 전해철은 1차 투표에서 36.80%의 득표율에 그치며 59.96%를 얻으며 과반을 확보한 이 지사에 밀렸다. 경기도지사 선거 본선에서도 이 지사가 최종 승리를 거머줬다.
혜경궁 김씨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이 지사 아내 김혜경씨를 해당 트위터 계정 소유주로 보고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 ▲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2017년 4월 문재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함께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고 있다.<전해철 블로그> |
△정치활동
전해철은 노무현 대통령후보 대선캠프의 법률지원단 간사를 맡으며 정계에 발을 들였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공직을 맡지 않고 변호사로 복귀했지만 참여정부 출범 2년차인 2006년에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합류했다. 2년 뒤인 2006년에는 민정수석에 올랐는데 이 때 전해철의 나이는 만 44로 역대 최연소 민정수석 기록을 썼다.
전해철은 블로그에서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으로 있으면서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이 법률과 규정에 따른 역할을 하도록 하고 배심원제의 일종인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도록 법제화했다. 부패방지를 위한 제도와 시스템의 구축을 위해 국가청렴위원회를 설치했다”고 썼다.
이후 19~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내리 당선되며 2012년부터 현재까지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앞서 2008년 18대 총선에서 경기 안산시 상록구갑 선거구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민주통합당의 안산시 상록구갑 지역위원장을 맡아 지역구 관리를 계속했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이 지역구의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60.76%의 표를 얻어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초선이었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아 수문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대 국회 전반기에 국정원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국정원 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을 했고 2014년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에 관한 특검 도입을 1호 의안으로 통과시키는 일도 주도했다.
20대 국회에서는 당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민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전 대통령 박근혜씨와 얽힌 비선실세 의혹 등을 파헤치며 탄핵을 이끌어내는 데도 기여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 후보캠프의 공동 조직특보단장을 맡았다.
| ▲ 전해철 민주통합당 의원(오른쪽)이 2012년 9월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경선 승리를 축하하며 함께 손을 들고 있다. <전해철 블로그> |
△변호사 활동
전해철은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1993년 육군 법무병과 검찰관으로 제대한 뒤 본격적으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변호사 개업 뒤 법무법인 해마루종합법률사무소에 합류했고 해마루 안산사무소를 설립했다. 해마루종합법률사무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정배 전 의원 등이 함께 설립했는데 여기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다.
안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동안 외국인노동자,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들을 위한 상담과 변론을 하고 안산시 고문변호사로 일했다.
2000년 ‘수지 킴사건’을 의뢰받아 수지 킴의 유가족이 배상을 받도록 하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수지 킴사건은 국가기관이 남편에게 무참히 살해된 수지 킴을 간첩으로 만든 사건이다.
당시 수지 킴의 남편은 아내를 살해한 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아내를 간첩으로 몰았는데 전두환 정권이 이를 간첩조작사건을 만들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수지 킴을 간첩이라고 선전했다.
이 과정에서 고문을 받은 수지 킴의 아버지는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유가족들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3년 동안의 법정 싸움 끝에 수지 킴의 남편이 살인범으로 구속되고 유가족은 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