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019년 8월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2차 경제보복 조치인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일본 경제보복 대응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 등 통상 분야에서 경제보복에 나서며 미국 등 해외인맥이 두텁고 통상 분야의 높은 전문성을 인정받는 김현종의 역할이 더 부각됐다.
김현종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한국의 처지를 전달하며 일본 경제보복에 관한 외교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김현종은 2019년 7월10일 미국을 방문해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직무대행과 찰스 쿠퍼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등을 만나 일본 수출규제 문제와 북한 문제 등을 논의했다.
김현종은 미국 방문을 마친 뒤 “생각했던 목표를 충분히 이뤘고 개인적으로 그 결과에 관해 만족한다”며 미국 측이 한국 의견을 잘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일본 경제보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한국-일본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폐기 결정을 주도한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정치권과 외교가 일각에서는 김현종이 한국 외교의 ‘자주파’를 주도하고 있다는 말도 나돌았다.
김현종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우리를 두고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점을 두 번이나 언급하며 우리를 적대국과 같이 취급하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 기본적 신뢰관계가 훼손된 상황에서 지소미아를 유지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김현종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로 한미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반박하며 한미관계가 굳건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현종은 “한미동맹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공통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66년 동안 굳건히 뿌리내린 거목”이라며 “한일 지소미아 문제로 한미동맹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발탁과 남북미 대화 추진
김현종은 미국과 북한의 하노이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던 2019년 2월28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현종 차장은 다양한 현장 경험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정부의 외교, 통일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미국을 상대로 교섭도 하고 새롭게 펼쳐지는 한반도 상황, 동북아 정세 속에서 미국을 직접 상대하면서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역할의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김현종이 임명된 날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며 북한과 미국 대화를 조율해 미국 쪽을 상대하는 김현종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김현종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한 달여 뒤인 2019년 3월30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4월 한국과 미국 정상회담과 의제와 북미 대화 재개 등을 논의했다.
방미를 마친 뒤 김현종은 “한국과 미국 정상 사이 의제를 논의해 다음주 정상회의에서 아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은 대북정책에 관한 한미 사이 엇박자 우려를 놓고 “엇박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최종 목적지나 로드맵에 관해서 한국과 미국의 의견이 다 일치하기 때문에 균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2019년 4월11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답방하기로 하고 2019년 6월30일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 때 남한과 북한, 미국의 판문점 회동과 북미 정상회담이 이어졌다.
△한국-미국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
김현종은 노무현 정부 때 한국-미국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이끈 장본인으로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개정 협상을 맡았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개정을 원하며 2017년 7월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동위원회의 특별회기 개최를 요청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7년 8월22일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1차를 열었다. 당시 양측은 자유무역협정의 효과와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 자유무역협정 재개정 필요성에 상호 이견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이 회기에서는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후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가 2배로 늘어난 점을 문제로 제기하면서 자유무역협정의 개정 또는 수정을 통해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좋다는 태도를 보였다. 자유무역협정 효과에 대한 조사·분석·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 어떠한 결정도 상호 호혜성의 원칙 하에 양측 간 합의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2차, 2018년 1월에 1~2차 개정 협상, 2018년 3월 3차 개정 협상을 하면서 합의를 마쳤다.
개정 협상에서 한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 면제국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불확실성을 완화했다. 농산물 개방이나 자동차부품 사용 의무화 등의 이슈도 방어했다.
다만 자동차부문에서는 자동차 안전기준 인정 범위 확대, 픽업트럭 관세 철폐 기간 연장 등 미국 측의 자동차 관련 관심사항이 반영됐다.
2018년 7월 한국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 분야별 문안을 놓고 진행된 협의를 사실상 완료했다. 2018년 9월24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안에 서명했다.
| ▲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019년 8월12일 백악관에서 찰스 쿠퍼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과 면담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두번째 통상교섭본부장 임명
김현종은 2017년 7월30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됐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경제통상분야 전문가로서 주요 교역국과 자유무역협정 체결 업무를 수행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당면한 통상현안들을 차질없이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발탁에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김 신임 본부장의 임명은 전문성과 국익을 고려한 합리적이고 실리 중심의 인선”이라고 평가했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김 신임 본부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통상교섭 분야 전문가”라며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 준비를 철저히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은 “현 시점에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고 기대했다.
김현종은 2017년 8월4일 취임식에서 “통상교섭본부 직원 모두가 전략가가 되기를 원한다”며 “우리가 예측 가능하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건 협상 상대방뿐으로 수동적이고 수세적 골키퍼 정신은 당장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017년 8월4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 선출
2016년 5월 장승화 전 세계무역기구 상소기구 위원이 미국의 반대로 연임에 실패하자 정부는 후임으로 김현종을 추천했다.
세계무역기구 상소기구는 국제통상법분야의 최고 심판기관으로 국제통상과 세계무역기구 협정의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정부로부터 독립되며 회원국을 다양하게 대표하는 위원들로 구성된다. 위원 숫자는 7명인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관행적으로 1석씩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 5자리를 지역·선진-개도국 사이 안배에 따라 뽑는다.
장 전 위원의 공석에 김현종을 포함 중국 2명, 일본, 호주, 대만, 네팔 각 1명 등 모두 7명이 입후보했다. 김현종은 10월8~26일 동안 스위스, 벨기에, 미국 등을 방문해 세계무역기구 인터뷰와 선거운동 활동을 벌였다.
김현종은 세계무역기구 사무국 근무와 통상교섭본부장, 유엔대사 역임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자질을 강조했다. 한국 정부도 재외공관을 통한 지지 확보, 주요국 통상장관과 통상당국 접촉 등으로 지원에 나섰다.
결국 2016년 11월23일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기구 정례회의에서 상소기구 위원에 공식 임명됐다. 상소기구 위원은 세계무역기구 분쟁의 최고 판단자로서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직위로 우리나라에서 상소기구 위원이 연속 배출된 것은 통상 분야의 쾌거로 여겨졌다.
△정치 출사표
2016년 2월18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영입인사 1호라서 더욱 주목받았다.
김현종은 입당 인사에서 “‘경제와 외교안보 글로벌 2.0’시대를 열고 있는 대한민국은 정치도 이 시대에 맞는 정치인이 필요할 것”이라며 “글로벌 진출 2.0시대를 정치인으로서 국민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종은 20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김현종은 “제 능력과 네트워크로 이 지역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똑같은 정치신인인 유동수 후보와 경선에서 맞붙었다. 한미 FTA의 주역이었던 김현종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유동수 후보는 30년 동안 이 지역에서 공인회계사로 활동하고 인천도시공사 상임감사, 송영길 전 인천시장 후원회 등을 지내며 지역기반을 다져 김현종은 결국 밀렸다. 공천 심사결과는 유동수 66.85%, 김현종 43.15%였다.
김현종은 경선 탈락 후 블로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계양 주민 여러분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에 감사드린다”며 “공정하고 당당한 경쟁을 함께 한 유동수 후보께 축하드리고 본선에서 꼭 승리하시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남겼다.
△삼성전자 애플 특허소송 관여
2009년 3월 삼성전자 글로벌법무담당 사장에 영입돼 해외특허, 반덤핑 등 해외 법무와 지적재산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글로벌시장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가 수시로 변하고 있어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며 “김 사장은 뛰어난 법무 실무가인 동시에 기업의 생존과 미래 전략을 이끌고 나갈 전략가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검증된 인물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특허경영을 강화해 나가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2011년 4월부터 벌어진 애플과 특허소송을 이끌었다. 애플이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삼성전자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자 삼성은 이에 반소하는 등 두 회사가 세계에서 특허전쟁을 벌였는데 김현종이 맞불전략을 주장한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현종은 애플과 특허 분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2011년 12월31일 삼성전자를 퇴직했다. 삼성전자 퇴직 예우 규정에 따라 3년 임기의 상담역으로 활동할 수 있으나 이를 거절했다.
재직 중이던 2011년 11월 대형 로펌으로 이적설이 나오기도 했으나 삼성전자는 이를 부인했다. 삼성 퇴직 이후에도 로펌으로 가지 않았다.
| ▲ 김현종 전 유엔대사가 2016년 2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입당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
△유엔대사 활동
김현종은 2007년 8월 제21대 유엔대사에 임명됐다.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성공적으로 타결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와 함께 본인의 의사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통상 전문가인 만큼 다자외교·안보분야에 취약해 유엔대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역할을 고려하면 차라리 제네바 대사에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성공적 추진에 크게 기여했고 미국 정·재계나 유엔 산하 각종 국제기구 등에 지인이 많고 국제사회의 인지도가 높은 점을 감안해 유엔대표부 대사에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박 수석은 또 “국제규범으로 움직이는 유엔기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법률에 대한 소양과 능력”이라며 “변호사 출신인 김 본부장의 '리걸(legal) 마인드'를 감안했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에서 정부 대표로서 다자외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해 유엔대사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현종은 2007년 10월 53개 아시아 회원국가로 구성된 유엔 아주그룹 의장에 선임됐다. 아주그룹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물론 안전보장이사회 등 유엔 주요기관과 산하기관 등의 선거에서 회원국 사이 입후보를 조정하고 각종 회의에서 아주 지역 뜻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8년 1월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에 선출됐다. 경제사회이사회는 개발과 인권 등 경제사회 문제 전반을 관할하는 유엔 주요 기관으로 김현종은 장 마르크 호샤이트 룩셈부르크 대사 등 3명과 함께 1년 동안 부의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2008년 5월 유엔대사에서 귀임했다.
△노무현 정부의 통상교섭조정관 통상교섭본부장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에서 통상현안 브리핑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눈에 들어 참여정부 통상부문을 사실상 주도적으로 이끌게 됐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 직후인 2003년 5월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발탁됐다. 노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받으면서 자유무역협정 추진 로드맵을 만들었고 사실상 자유무역협정 추진의 전권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개방형 공무원 채용과 한국-미국 자유무역협정 기획단 신설 등 인사와 조직개편 권한까지도 행사할 수 있었다.
2004년 7월 통상교섭조정관이 된지 1년3개월 만에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해 40대의 젊은 나이로 통상부문의 사령탑이 됐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45세의 젊은 나이지만 통상법을 공부했고 4년 동안 세계무역기구(WTO)의 수석고문변호사를 역임했으며 지난해부터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대외협상 업무를 차질없이 수행해 조직 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아세안, 유럽연합, 캐나다, 인도 등 동시다발적 대형 자유무역협정을 함께 추진하면서 한국 자유무역 지도를 확대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6년 2월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발족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쌀·쇠고기 등 농축산물 문제, 자동차 ·섬유 등 제조업 문제, 스크린쿼터 등 문화예술 문제, 개성공단 생산품 지위 등 외교안보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지 않은 과제로 여겨졌다. 김현종은 “궁극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지니고 추진한다”고 밝혔다.
협상 만료 시한이 닷새 남은 2007년 3월26일부터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카란 바티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와 '끝장 협상'에 들어갔다. 마지막날인 31일 양쪽은 4월2일 새벽 1시까지 협상 연장에 합의하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끝까지 첨예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결국 2007년 4월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타결했다. 김현종은 국회 보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이면합의가 없으며 재협상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로 추가 협상이 진행돼 7월1일에야 서명이 이뤄졌다.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2010년 한 차례 더 추가협상을 거쳤다.
2007년 5월6일 한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의 협상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8월 김종훈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수석대표에게 통상교섭본부장 자리를 넘기고 유엔대사로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