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은 최근 4천억 원대의 사기적 부정거래 의혹과 관련해 금융감독원과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래픽 씨저널> |
[비즈니스포스트] 4천억 원대의 사기적 부정거래 의혹이 엔터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연예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거인,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 이야기다.
방시혁 의장은 최근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없다고 속여 그들의 지분을 특정 사모펀드에게 매각하도록 유도하고, 그 사모펀드가 하이브 주식을 통해 올린 수익을 분배받은 혐의로 금융감독원과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를 두고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창업주 리스크가 곧 기업 전체의 경영 불확실성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하이브의 지배구조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 66.7점, 지표가 말해주지 않는 구조적 우려
2025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따르면 하이브의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은 66.7%에 이른다. 자산 2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평균 준수율(63%)보다 높은 수치다.
하지만 이 숫자만으로 하이브가 ‘거버넌스 우등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숫자에서는 보이지 않는 잠재적 리스크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대표 프로듀서의 능력과 이미지가 기업 전체의 인상을 결정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특성상, 창업주이자 대표 프로듀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또다른 공룡인 YG엔터테인먼트 역시 대표프로듀서인 양현석 총괄프로듀서와 관련된 오너 리스크로 몸살을 알았던 적이 있다.
특히
방시혁 의장은 최대주주로서 하이브를 지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사회 의장직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사회 의사결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이브는 2025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서 최대주주와 대표이사가 분리돼 있어 전문경영인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방 의장이 사내이사이자 이사회 의장이라면 이를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방 의장이 이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살피면, 결과적으로 '경영 감시' 기능을 수행해야 할 이사회가 사실상 창업주의 의사를 추인하는 기구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 사외이사는 '무늬만 독립', 출석률·의결 내역이 말해주는 현실
하이브 이사회는 외형적으로는 독립성이 확보돼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 이사회 구성원 가운데 사외이사가 과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질적 감시와 견제 기능은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4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5명의 사외이사 중 이사회 출석률이 100%인 인물은 단 한명(이미경 이사) 뿐이며 나머지 이사들은 출석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사외이사 전체 평균 출석률은 91.4%로, 삼일PwC거버넌스센터가 조사한 상장사 평균치(96%)에 못 미친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이사회 안건에서 사외이사 전원이 일률적으로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2024년 하이브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열렸던 이사회의 모든 안건에서 단 한 번이라도 반대 의사를 표시한 사외이사는 한 명도 없다.
물론 국내 많은 상장사들의 이사회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사회 의장인 오너에 대한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2월20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국경제인협회 제64회 정기총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창업주의 개인 역량이 기업 성장의 핵심 동력, 창업주의 권력은 경쟁력인 동시에 리스크
한국의 엔터테인먼트·IT 산업은 창업주의 개인 역량과 영향력이 기업 성장의 핵심 동력인 경우가 많다.
방시혁 의장뿐 아니라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창의성총괄책임자(CCO), 더 나아가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 등 창업주의 카리스마와 능력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나 IT 기업을 위로 도약시키는 핵심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창업주의 카리스마가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문화에서 구조적으로도 창업주에게 힘을 실어주게 된다면, 창업주의 개인 리스크가 곧 기업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가 어려워진다.
카카오가 대표적 사례다. 카카오는 김범수 의장의 통찰력과 리더십을 무기로 성장했지만 그의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브랜드 이미지와 시장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하이브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방 의장의 영향력이 막강한 현재의 구조 아래에서는 유사한 사태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이러한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사회 의장직을 외부 인사에게 위임하고, 사외이사의 실질적 역할을 강화하는 등의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엔터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이브 뿐 아니라 대부분 엔터사에서 창업주의 영향력은 굉장히 강하다"라며 "상장된 엔터기업들은 지배구조의 투명성, 이사회의 독립성 등을 강화해 나갈 필요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