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자동차그룹의 미국 내 투자 확대에도 그룹 일감을 확보하는 일이 늦춰질 가능성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미국 노동자 우선 정책 기조가 현대엔지니어링에서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미국 내 공장을 짓는 일에 대해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엔지니어링 미국서 비자 단속에 현지 공장 건설 늦춰져, 그룹 일감 밀릴 가능성

▲  미국 이민 당국에 구금됐다가 풀려난 한국인 근로자들이 탑승한 대한항공 전세기가 11일(현지시) 미국 조지아주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후 미국 이민 당국에 비자 단속에 따라 미국 조지아주 남부 포크스턴 시설 등에 구금됐던 현지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한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에서는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이민 당국이 불법체류 및 고용과 관련해 대대적 단속을 벌였다.

이에 HL-GA 현장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은 구금됐고 공장건설도 멈췄다. 이 가운데 현대엔지니어링 협력업체 근로자 156명도 체포됐는데 이 가운데 한국인 근로자 66명도 포함됐다.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들은 지난 11일 오전 석방됐고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한국행 대한항공 전세기에 탑승해 귀국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HL-GA 시공업체로서 현재 미국 당국의 불법 비자 및 근로 환경 관련 조사에 임하면서 앞으로 현지 공사와 관련한 인력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미국 당국은 현대엔지니어링 미국 법인이 보유한 고용 관련 문서와 전자기기 등을 압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근로자 구금 사건으로 HL-GA의 10월 준공 계획도 늦춰졌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11일(현지시각)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오토모티브뉴스 회의(콩그레스)에 참석해 "이번 구금사태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가동이 최소 2~3개월 연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그동안 그룹사 일감을 확보하며 해외 사업을 확대했는데 이런 구조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나온다.

한미간 외교 협상 및 근로자 비자 해결 등의 과정이 필요해지면서 현대엔지니어링이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에 따른 공장 건설공사도 지연될 공산이 커졌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3월 향후 4년 동안 210억 달러(30조8217억 원)의 미국 신규 투자를 발표했다. 지난 8월에는 미국에 추가로 50억 달러(6조9450억 원)투자하겠다며 핵심 투자 분야로 제철과 자동차, 로봇 등 미래산업을 들었다.

현대제철은 58억 달러(약 8조 1000억 원)를 투입해 2029년까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한다. 저탄소 고품질의 강판을 생산해 자동차를 비롯해 미국 핵심 전략산업에 공급한다.

이와 함께 부품, 물류 그룹사들도 설비를 증설해 부품 현지화율을 높이고 배터리팩 등 전기차 핵심부품의 현지 조달을 추진하는 등 완성차-부품사 공급망을 강화한다.

3만 대 규모의 로봇 공장도 신설한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은 물론 자율주행,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중심차(SDV) 등 미래 신기술과 관련된 미국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고, 보스턴다이내믹스, 모셔널 등 미국 현지 법인의 사업화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이런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가 비자를 포함한 고용 시스템을 더욱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해지면서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 공장 건설을 주로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던 현대엔지어링 역시 해외 일감 확보가 차질을 빚을 공산이 커진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오토모티브뉴스 콩그레스에서 "그룹 입장에서 수백 명이 구금됐다가 본국으로 송환되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은 현지 법규를 철저히 준수하고 합법적이고 안정적 고용 시스템을 확립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엔지니어링 미국서 비자 단속에 현지 공장 건설 늦춰져, 그룹 일감 밀릴 가능성

▲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엘러벨에 위치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기계 장비를 설치할 기술 인력이 없고 또 이렇게 일할 사람들 체류하게 해달라는 비자는 안 된다고 그러니 기업들입장에서는 고민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대미 직접 투자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 공화당 및 조지아주 미국 건설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다는 점에서 앞으로 미국 당국과의 한국인 근로자의 비자 관련 협상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애초 이번 사건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반영되면서 현지에서 공장 건설을 진행하는 한국 기업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번에 HL-GA를 신고했다고 주장하는 조지아주 기반 정치인인 토리 브래넘은 6일(현지시각)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 기업들은 세제 혜택을 받았지만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조지아 주민을 고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와 CNBC 등 외신을 살펴보면 미국 현지 기업이 아닌 외국 건설사가 공사를 맡은 구조가 비자 단속을 유발한 주요한 요인이 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일례로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모두 4곳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미국 현지 건설업체가 아닌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한 조지아 공장에만 대규모 단속이 들이닥쳐 한국 근로자를 구금했다. 

유진투자증권은 "이번 사안으로 미국 현지 공장 건설에 합법적 취업 자격을 갖춘 숙련 노동자의 부족과 인건비 상승 압력이 불가피하다"며 "현대엔지니어링을 비롯해 미국 내 진행되는 대형 프로젝트 전반에서 공정 차질과 원가 상승 요인으로 확대될 가능성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현대가 공장을 짓는 것을 좋아한다"면서도 "다만 근로 비자(working visa)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러트닉 장관은 "잘못된 방식, 옛날 방식으로 해선 안 된다"며 "적법한 절차를 밟아라. 트럼프 대통령도 합법적인 절차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이번 HL-GA는 건설 마무리 단계로 일정이 늦춰지더라도 대금 지급 등과는 크게 연관이 없다"며 "비자 문제 해결 등은 향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인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