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는 챙기면서 '혈맹'은 뒷전? 네이버에 '심기 불편'한 신세계 이커머스

▲ 네이버와 컬리의 협업을 놓고 신세계그룹 일각에서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왼쪽부터) 이윤숙 네이버 쇼핑사업 부문장, 김슬아 컬리 대표이사, 정경화 네이버 네이버플러스스토어 프로덕트 리더가 9일 서울 종로 네이버스퀘어에서 열린 ‘네이버커머스 밋업’ 행사에 참석한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네이버와 컬리가 협업한 것을 놓고 신세계그룹 일각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과거 신세계그룹과 지분까지 맞교환하면서 시쳇말로 ‘피를 섞었다’고 했는데 오히려 컬리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한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12일 유통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네이버가 커머스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 컬리와 손을 잡고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 ‘컬리N마트’를 출시한 것과 관련해 ‘혈맹(血盟)’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해줬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시각이 나오는 배경은 자리 배치 때문이다.

네이버는 컬리N마트를 자체 쇼핑 플랫폼인 ‘네이버플러스스토어’ 메인 탭 가운데 하나로 배치했다.

플랫폼들이 어느 화면에 어떤 브랜드를 배치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주요 탭에 배치한다는 것은 오프라인 매장으로 따지면 고객들이 가장 많이 지나치는 이른바 알짜 매대에 자리를 마련해준 것과 마찬가지다.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은 이를 보통 ‘황금존’이라고 부른다. 고객들의 시선이 가기 쉽고 상품을 집기도 쉬운 이런 매대에 배치된 상품은 다른 매대에 배치됐을 때보다 매출이 최소 3배 이상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컬리N마트가 네이버의 메인 탭 하나를 꿰찼다는 것은 사실상 황금존을 부여받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컬리N마트는 앞으로 네이버플러스스토어의 메인 탭을 상시 이용하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자리만 좋은 것이 아니다. 네이버는 컬리N마트를 고객의 동선이 닿는 곳곳에 노출하고 있다.

예컨대 네이버의 주요 카테고리 가운데 하나인 ‘가공식품’을 눌러 들어가면 간편조리식품, 생수/탄산수, 커피/차류 등 여러 세부 분류가 나열되어 있는데 그 상단에 배치된 것이 바로 컬리N마트다.

네이버가 컬리에 최고 대우를 해줬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네이버플러스스토어에 접속하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컬리N마트가 걸려 있기 때문에 매달 300만~400만 명가량인 사용자 일부만 구매해도 입점 효과가 극대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네이버에 입점한 다른 유통기업들도 많지만 컬리와 같이 메인 탭에 이름을 걸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던 회사는 없었다.

김슬아 컬리 대표이사도 네이버와 협업을 놓고 9일 서울 종로 네이버스퀘어에서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보시다시피 서비스 진입점이나 사용자경험(UX) 측면에서 두 서비스가 강결합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빠르게 접근(액세스)이 가능하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비즈니스포스트 취재에 따르면 이러한 네이버와 컬리의 협업을 다소 불편하게 느끼는 목소리가 신세계그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4년여 전 네이버와 지분까지 교환하면서 강하게 협업하자는 취지로 돈독한 관계를 맺었는데 실제로는 컬리를 더 우대한 분위기가 짙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혈맹 관계는 사실상 뒷전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실제로 신세계그룹의 계열사들인 이마트와 SSG닷컴, 이마트에브리데이, 트레이더스홀세일클럽 등이 네이버에 입점해 있지만 이들을 네이버플러스스토어 메인 화면에서 찾기는 힘들다.

이들이 판매하는 상품을 구매하려면 웹페이지 기준으로 메인 화면의 11번째 탭을 눌려야 한다.

해당 화면에 접속해도 이마트에브리데이와 이마트몰, SSG새벽배송, 트레이더스 등은 편의점 채널인 CU, GS25뿐만 아니라 홈플러스익스프레스, GS더프레시, 초록마을, 동네슈퍼, 동네시장, 백화점식품관 등 다양한 유통채널의 일부에 불과한 느낌이 강하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컬리N마트는 네이버가 제휴했던 여러 브랜드나 회사 가운데 가장 좋은 조건으로 네이버에 입점했다고 볼 수 있다”며 “끈끈한 동맹 관계를 구축했다던 신세계그룹 입장에서는 네이버와 컬리의 협업이 마뜩찮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네이버 스스로도 컬리와 더 높은 수준의 결합을 선택했다고 보고 있다.

이윤숙 네이버 쇼핑사업부문장은 최근 미디어 간담회에서 “신세계그룹과 협업은 잘 작동 중”이라며 “그럼에도 저희가 시장에 반향을 일으킬 정도의 임팩트를 주려면 당시 했었던 제휴와 좀 다르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지분을 교환했느냐 아니냐가 제휴의 레벨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시장 상황이 달라지기도 했고 고객 관점에서 더 차별화한 서비스를 보여주자는 취지 아래 컬리N마트를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네이버가 컬리를 특별하게 대우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시선도 있다.

이커머스업계에서 플랫폼 제휴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플랫폼들은 대부분 새 브랜드와 관계를 맺기 배너를 띄워준다거나 잘 보이는 자리에 브랜드를 노출시켜주겠다는 전략을 쓴다”며 “네이버가 컬리와 협상하면서 좋은 자리를 내줄 테니 수수료를 더 달라고 했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수준 높은 결합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만으로 누구를 더 우대하고 누구를 더 차별했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컬리는 챙기면서 '혈맹'은 뒷전? 네이버에 '심기 불편'한 신세계 이커머스

▲ 2021년 3월16일 오전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신세계·이마트-네이버 사업제휴합의서 체결식’에서 (왼쪽부터)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강희석 이마트 대표이사, 차정호 신세계백화점 대표이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네이버 입장에서 신세계그룹보다는 컬리와 협업하는 것이 여러모로 더 수월하기 때문에 컬리와 더 강하게 결합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냐는 의견도 있다.

협업에서 시너지를 내려면 서로 원하는 것을 내주고 받아야 하는데 신세계그룹의 덩치를 감안했을 때 네이버가 원하는 바를 충분히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비교해 10년차 스타트업인 컬리는 비교적 네이버가 상대하기 쉬운 협력기업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네이버와 신세계그룹의 리더십 변화가 두 회사의 강한 결합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네이버와 신세계그룹이 지분을 교환할 당시 네이버 수장은 한성숙 전 대표이사였고 신세계그룹에서 이를 주도한 인물은 강희석 전 이마트·SSG닷컴 대표이사였다.

한 전 대표는 2021년 말 네이버 대표이사에서 자진 사임했고 강희석 전 대표 역시 2023년 9월 실시된 신세계그룹의 정기 임원인사에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각 회사에서 혈맹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모두 사라지다보니 두 회사의 협력을 주도해 이끌만한 인물이 없어 (협력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신세계그룹과 제휴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형태나 더 높은 수준의 결합도 가능하다”며 “네이버는 항상 여러 기업들과 제휴에 열려 있으며 어느 기업을 더 우대하거나 차별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