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톡톡] 오너들은 세대교체 인사로 뭘 노리나, 노익장이 살아남는 법 재생시간 : 08:52  |  조회수 : 2,538  |  윤선호

이재근 KB국민은행장 내정자 만55세,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총괄 사장 내정자 만46세,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 내정자 만40세. 대기업과 금융권 CEO 나이가 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인사에서도 각 사업부 수장이 모두 50대로 교체됐다. 기존 대표이사들은 3년여 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고 이번에도 유임될 것으로 예상도 나왔지만 모두 바뀌었다.

부사장 이하 임원 인사에 30대, 40대 인물들이 여럿 발탁된 곳들도 많다.

한마디로 이번 인사의 핵심 키워드는 '세대교체'라고 할 수 있다. 세대교체 인사는 결국 인사권자인 오너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너들은 세대교체 인사를 통해 어떤 효과를 얻기를 원하는 것일까?

그 와중에 노익장을 보이는 인사들도 많은데 오너들은 노익장에게 무엇을 바랄까?

◆ 젊어진 대기업 경영진들, 인사 키워드는 세대교체

네이버는 만40세 최수연 글로벌사업지원부 책임리더를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코스피에서 시가총액 3~4위를 다투는 공룡기업에 MZ세대 대표가 탄생하게 됐다.

최고재무책임자로는 만43세의 김남선 책임리더가 내정됐다.

네이버는 전반적으로 임원들의 나이도 젊다. MZ세대 바로 앞 세대인 X세대(1969~1978년 출생) 이하 비중도 높다.

기업정보 분석기관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네이버 임원 가운데 94.2%는 69년 이후 출생자다. 카카오는 그 비중이 92.9%다.

네이버나 카카오는 업종의 특수성 때문에 경영진의 나이가 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4대 그룹을 비롯한 다른 대기업집단의 경영진도 많이 젊어졌다.

SK그룹에서는 만46세 노종원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가 사업총괄 사장에 올랐다.

만39세 MZ세대인 이재서 전략기획담당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9년에 상무·전무·부사장으로 구별되는 임원 직급을 부사장으로 통일했는데 그 결과 30대 부사장이 나왔습니다. 단순히 사람을 교체할 뿐 아니라 직급파괴를 통해 세대교체가 가속화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기도 하다.

임원에서 사장까지 오르는 시간이 단축될 수도 있게 된 것인데 앞으로 30~40대 CEO가 나올 가능성이 더 많아졌다.

SK그룹의 X세대 이하 임원 비중은 53.6%에 이른다.

LG그룹은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최대 규모의 상무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13개 상장사 임원 745명 가운데 X세대 이하 임원 비중은 50.7%다.

금융권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KB금융그룹은 주력인 KB국민은행 은행장 자리에 만55세인 이재근 영업그룹 이사부행장을 선정했다.

다른 주요 은행장들을 보면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만60세,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만58세, 권준학 NH농협은행장 만58세, 박성호 하나은행장 만57세다. 이 내정자가 은행장 가운데 최연소다.

일반 기업문화와 달리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조직문화가 남아 있는 은행권에서도 세대교체의 요구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세대교체, 인사에 담긴 오너의 엄중한 메시지

이런 세대교체의 한 축에는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전환 등이 중요한 경영과제로 떠오른 시대상황과 무관치 않다.

삼성그룹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은 얼마 전 미국 출장을 다녀온 뒤 "시장의 냉혹한 현실에 마음이 무겁다"며 위기의식을 보인 바 있다.

이런 이 부회장의 위기의식은 곧바로 삼성그룹의 세대교체 인사로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지각변동 인사라는 평가도 나온다.

위기감이 느껴지는 것은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특히 디지털 전환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원래 은행은 고객들이 알아서 찾아오기 때문에 비교적 쉬운 영업을 해 왔다. 은행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게 일반적 통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케이뱅크 등 IT를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경쟁자들이 등장하며 기성 금융권에서는 자칫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현재 은행주 시가총액을 보면 카카오뱅크가 30조 원을 넘으며 가장 높은데 KB금융은 23조 원 수준이다.

KB금융도 이런 사정들을 고려해 젊은 은행장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근 은행장 내정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3개월 이내에 핀테크업체에 뒤지지 않는 앱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시대 분위기가 젊은 리더를 요구하는 측면도 있다. 특히 주력 세대가 변하고 있는 만큼 새로 떠오르는 젊은 세대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더욱 젊은 리더가 필요하다.

정치, 경제, 사회 어느 영역에서나 MZ세대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소비시장에서는 주요 소비계층으로, 기업조직 안에서는 말단에서 중간관리자에 이르는 실무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 각 기업 사정을 들어보면 MZ세대 안에서도 80년대 출생과 90년대 출생이 서로 이해를 못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최정점에 있는 리더들도 더욱 젊은 감각을 지닌 인물로 세울 필요성이 커진 셈이다. 

세대교체 인사를 시행하는 밑바탕에는 발탁이란 과정을 통해 기존 조직을 쇄신하려는 오너의 의지가 깔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는 차원에서 문책과 경고의 의미로 인사가 단행되기도 한다.

롯데그룹에서 조직개편과 더불어 외부 인물을 수혈하는 큰 폭의 인사가 단행됐다. 롯데그룹은 재계에서 순혈주의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그룹의 핵심인 유통부문을 총괄하는 대표에 외부 출신인 김상현 전 홈플러스 부회장이 선임됐다.

승진 임원과 신임 임원 수도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외부 인사를 영입하고 임원 인사폭을 키웠다는 것은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도 많다는 의미다.

다소 부진했던 사업성과와 느린 변화 속도에 대한 문책과 경고의 의미가 있는 셈이다. 앞으로 강력한 변화를 추진하겠다는 신동빈 회장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너의 경영권 승계에 따른 물갈이의 필요성도 세대교체의 중요한 요인이다.

선대 회장을 보좌했던 임원진을 자기 사람으로 교체함으로써 그룹 장악력을 높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세대교체에도 노익장은 건재할까

이런 세대교체의 흐름 속에서 기존에 기업의 중추 역할을 했던 노익장들은 자취를 감추게 될까?

그룹사에 남아 있는 장수 CEO들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1953년 출생으로 만68세인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부회장은 LG뿐만 아니라 10대 그룹의 최고령, 최장수 CEO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몇 년 전부터도 차 부회장이 교체될 것이란 말이 LG생활건강 직원들 사이에서도 나왔는데 이번 인사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그가 LG생활건강 대표이사에 오른 시점은 2005년, 이미 16년 재임했다. 한 기업에 16년 몸담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CEO로 16년을 일했다.

차 부회장은 CEO로 있는 동안 LG생활건강 영업이익을 40배 이상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그의 경영 성과는 '차석용 매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DB손해보험의 김정남 부회장도 장수 CEO다. 김 부회장은 1952년 출생으로 만69세다. 2010년 DB손해보험 전신 동부화재 대표이사에 오른 뒤 지금까지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처음 대표에 오를 때 회사의 고객은 530만 명이었는데 2020년에는 1천만 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매출은 6조 원대에서 13조7천억 원, 총자산은 10조 원에서 43조7천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들은 경영능력을 실적으로 입증하며 노익장의 건재를 과시한 셈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성과가 중요하다는 점을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익장이 그룹의 좌장 역할을 맡는 사례도 꽤 있다. 오너의 경영 승계, 오너의 법적 리스크, 오너의 건강 문제 등 특수상황에서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관록 있는 경영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SK그룹이 고 최종현 회장에서 현 최태원 회장으로 경영권 승계를 하는 과정에서는 손길승 회장이 그룹의 좌장을 맡았다.

1998년 고 최종현 회장이 폐암으로 별세하자 30대인 최태원 회장이 그룹을 승계하게 됐다. 당시는 IMF 외환위기 무렵으로 경영 환경이 녹록치 않던 시기였다.

CJ그룹에서는 손경식 회장이 오너인 이재현 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손 회장은 이 회장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이재현 회장이 과거 탈세와 회사자금 횡령 혐의로 수감된 일도 있었고 희귀 유전질환을 앓고 있기도 한 만큼 오너를 보좌하는 좌장으로서 역할이 막중했다고 할 수 있다.

각 기업의 노익장 CEO나 임원들은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정·재계와 국내·외를 막론해 방대한 인맥을 자랑하기도 한다. 노익장은 여러모로 소중한 인적 자원이다.

그룹의 오너로서는 세대교체 인사를 통해 강력한 변화의 의지를 보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룹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노익장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조직에 전달할 필요도 있다.

만약 오너가 노익장을 배제한 채 세대교체란 명목으로 젊은 인재들만 찾거나 외부 인사 영입에만 공을 들인다면 조직원들의 충성심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조직에 충성하기보다는 다른 기업에 스카웃되려고 노력하는 분위기가 많아질 수도 있다.

이번 삼성그룹 인사를 보면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한 게 눈에 들어온다. 오너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보다 직급상으로는 더 높아졌다. 그만큼 그의 공로를 인정하고 예우해 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기업 인사에서 젊은 피와 노익장의 공존은 생경한 장면은 아니다. 언뜻 세대교체라는 바람 속에 노익장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대기업 사장단 인사에서 나타난 세대교체 기조는 임원인사, 직원인사 등 후속 인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세대교체의 흐름이 우리 기업문화에 어떤 전환기가 될까. [채널Who 류근영 기자]ⓒ 채널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